Ted Cohen - Jokes: Philosophical Thoughts on Joking Matters (1999)


농담이란 농담을 던지는 자와 듣고 웃는 자가 나누는 만찬이다.  만찬을 나누려는 음모이다.  만찬을 즐기는 동지애다.  동지애를 느끼려는 몸짓이다.  그 몸짓에 인간됨이 담겨 있다.  농담은 또한 부조리함에 대한 진실된 반응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절망스러운 삶, 때로는 무서운 세계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 세계와 삶을 온전히 유지해나가려는 본능이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작동하는 방어기제이다.

오케이, 거기까지.  부제에는 분명 농담거리에 대한 철학자의 생각을 담았다고 해 놓았는데 아무래도 문화비평서처럼 나간다.  재미있지만 그다지 열렬하지 않다.  게다가 유대인에 관한 농담을 다룬 제 5장에 이르면 하품까지 나온다.  (코헨이란 이름은 분명 유대 이름이렷다!).  그러나 마지막 장인 제 6장에 이르러 나는 추운 겨울날 물벼락을 뒤집어 쓴 채 바깥에서 부들부들 떨며 서있는 느낌을 받는다.  마뜩찮은 농담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거북한 감정을 저자가 고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흑인들 한 무리가 어둑한 뒷골목에서 어떤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있다.  그 여자를 구하려면?  농구공 하나만 던져주면 된다.

저자는 위 농담을 들었을 때 왜 거북하게 느끼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지 따지기 시작한다.  농담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게 뭐 어쩐다구?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농담을 만들거나 주고 받는 행위가 그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자세나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부추기므로?  그게 말이나 되나?  이렇게 하나 하나 도대체 왜 저따위 농담을 거북하게 느끼는지 그 뒤에 숨은 나 자신의 가정과 편견과 선입관은 무엇인지 까발려 나간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The fact that this joke works is a fact only because of genuine truths--not truths about black men, but truths about how black men are thougt of.  These truths are, for instance, that young black men are associated with basketball, and they are thought to have a passion for basketball that takes them away, for instance, from learning mathematics or learning to read; and that is what is being insinuated in a joke in which they give up even violent sex--another of their putative passions--for the chance to slam-dunk.  I know all that, that these are associations that go with young black men, and it is only because I know all that that I am able to respond to the joke.  Do I, perhaps, dislike it in myself that I know these things?  And do I then dislike my own laughter at the joke?  Is the joke working its magical establishment of intimacy by forcing me to acknowledge something I don't care for in myself?  Would I rather that I did not know these things?  Of course I wish that these were not things to be known, but is it my fault that there are, and that I know them? (pp. 80-81)

이 대목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렇구나.  내 속의 내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편견과 선입관과 일반화할 수 없는 부분적인 인상들의 편린을 그런 농담을 통해서 내가 힐끗 힐끗 들여다 보고 있었구나.  그게 불편했던 거로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거나 부재를 증명할 수 없는 추악한 현실 때문에.  하지만 저자가 묻듯이, 정말 그런 느낌과 사실을 느끼고 또 알고 있음이 내 잘못일까?  예를 들어 흑인 남자들이 운동에 정신이 팔려 학교공부를 멀리하는 경향과 범죄에 손을 대는 이들이 많은 사실을 알고 있고 그런 부분적인 성향과 사실을 바탕으로 저따위 농담에 웃는 내가 잘못일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사실을 직시하라고.

[A]nd that is a God-damned shame.  But it is a fact.  By all means, wish that it were not a fact.  Weep because it is a fact.  Try to change the world so that it will cease to be a fact.  But don't run away from the fact, don't force yourself to deny it. (p. 84)
이런 점들을 메타윤리 이론을 들먹이며 까부시려 들어도 소용없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안에서, 그로부터 제조된 농담을 듣고 웃고 불편해하는 일 자체에는 아무런 윤리적 잘못 따위를 가려낼 수 없으므로.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저따위 농담을 듣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일 자체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속 불편해해야 한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어쩌면 농담의 가장 치열한 철학적 고민이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기에.  아니 우리 자신의 실존에 관한 고민이.



by The3rdEye | 2006/01/20 00:05 | 이론과 철학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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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ess at 2006/01/20 13:47
<예를 들어 흑인 남자들이 운동에 정신이 팔려 학교공부를 멀리하는 경향과 범죄에 손을 대는 이들이 많은 사실을 알고 있고 그런 부분적인 성향과 사실을 바탕으로 저따위 농담에 웃는 내가 잘못일까?>
-> 운동에 정신이 팔려서 학교 공부를 멀리 한다기보다는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공과 출세의 길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운동에 집중하는거죠. 그나마 운동이나 랩같은 걸로는 길이 트일 수 있지만, 빈민촌 공립학교에서 공부 잘 해 봤자 대학 잘 갈 확률도 적고 가더라도 집에 돈도 없고. 그 대신에 운동을 하면 운동 장학금으로 대학을 갈 수도 있는 거고요. 또 흑인이 공부 잘 해서 뭐할래, 란 편견과도 만나게 되죠. 범죄에 손을 대는 건 역시, 빈민촌의 빈익빈 현상 때문이고요.
Commented by ethar at 2006/01/20 17:28
운동으로 성공하기보다는 공부가, 그보다 문제거리와의 조우가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흑인(만은 아니겠지만)커뮤니티의 교육문제가 대학진학보다는 중고등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만은 아니겠지만, 운동이나 예능으로 부와 명성을 얻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아닌가 합니다. 재능과 노력은 기본이고, 행운이 몇 갑절 같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의 스캔들이나 불행한 실수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The3rdEye at 2006/01/20 17:57
에... 지금 논점은 그게 아니거덩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농담을 듣고 웃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거걸랑요. --+
Commented by ethar at 2006/01/21 07:26
맞습니다, 용서하시길 (-ㅅ-);

존재하는 인식, 편견 혹은 오해를 부정하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얘기가 되나요.
농담에만 해당하지는 않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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